1947-04-15일자
내셔널리그 정규시즌대회
5-3스코어
에베츠필드, 브루클린장소
경기는 이렇게 흘러갔다
브랜치 리키 단장이 2년간 준비한 계획의 실행일이었다. 로빈슨은 등번호 42번을 달고 1루수로 2번 타순에 들어섰고, 60년간 유지되던 메이저리그의 불문 인종 장벽을 그 자리에서 끝냈다. 이날 경기 자체는 평범했다 — 로빈슨은 3타수 무안타에 희생번트 하나를 기록했다. 7회 다시 번트를 댔을 때 브레이브스 1루수의 송구 실책으로 출루했고, 그가 2루로 향하는 사이 수비가 흔들리며 3루까지 진루한 뒤 후속 타자의 2루타 때 결승 득점을 올렸다. 다저스는 5-3으로 이겼다. 관중 2만6623명 중 절반 이상이 흑인 관중이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. 로빈슨은 이후 원정 구장마다 조직적인 야유와 협박 편지, 스파이크 태클을 견뎌야 했고, 필라델피아 감독 벤 채프먼의 인종차별 발언은 오히려 다저스 동료들을 결속시켰다. 그해 그는 타율 2할9푼7리, 12홈런, 리그 1위인 29도루를 기록하며 초대 신인왕에 올랐고, 브루클린은 페넌트를 차지했다.
왜 지금도 회자되나
야구 역사상 단일 경기로는 가장 결과가 컸던 날이다. 이 데뷔는 미국 프로 스포츠의 인종분리를 무너뜨렸을 뿐 아니라, 브라운 판결과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보다 앞서 전국적으로 방영된 통합의 사례가 되었다. 야구계 내부에서는 인재 풀이 단번에 넓어지며 이후 20년간 내셔널리그의 우위를 만들어냈고, 42번은 1997년 전 구단 영구결번이 되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