경기는 이렇게 흘러갔다
미국과 독일의 대결은 2-2 동률로 마지막 단식에 이르렀고, 승자가 챌린지 라운드에 올라 영국의 데이비스컵 4연패에 도전할 자격을 얻는 상황이었다. 나치 정권의 홍보 대상이 되기를 거부해 온 고트프리트 폰 크람은 첫 두 세트를 8-6, 7-5로 따내며 앞서 나갔다. 돈 버지는 3세트를 6-4, 4세트를 6-2로 되찾아 승부를 5세트로 끌고 갔으나 곧바로 1-4로 끌려갔다. 여기서부터 버지는 서브 게임을 지켜내며 한 게임씩 따라붙었고, 6-6 이후 두 선수는 서로의 매치 포인트를 잇달아 막아냈다. 버지는 마지막 게임에서 다섯 번째 매치 포인트 만에 폰 크람의 서브를 브레이크하며 8-6으로 경기를 끝냈다. 관중석에는 미국 대표팀 코치이자 폰 크람의 옛 라이벌이던 빌 틸든이 앉아 있었다. 미국은 이어진 챌린지 라운드에서 영국을 꺾고 1926년 이후 11년 만에 데이비스컵을 되찾았고, 버지는 이듬해인 1938년 4대 메이저를 모두 우승하며 사상 첫 그랜드슬램을 완성했다. 폰 크람은 1938년 나치 당국에 체포되어 수감되었고 그 여파로 1939년 윔블던 출전을 거부당했다.
왜 지금도 회자되나
선수들 자신이 오랫동안 역사상 최고의 경기로 꼽아 온 승부이며, 스포츠와 정치가 코트 위에서 정면으로 겹친 초기 사례다. 이 승리는 미국 테니스의 11년 공백을 끝내고 버지의 1938년 그랜드슬램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었으며, 폰 크람의 이후 수감은 챔피언의 운명이 경기 결과 바깥에서 결정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