경기는 이렇게 흘러갔다
1860년 10월 17일, 프레스트윅 골프클럽에 프로 여덟 명이 모였다. 전해 세상을 떠난 앨런 로버트슨의 뒤를 이을 최고의 선수를 가리자는 취지였고, 상금은 한 푼도 없었으며 우승자에게는 붉은 모로코 가죽에 은 버클을 단 챌린지 벨트가 주어졌다. 프레스트윅의 코스는 12홀이었으므로 선수들은 하루에 세 바퀴를 돌아 36홀을 마쳐야 했다. 머슬버러 출신의 윌리 파크 시니어가 55타, 59타, 60타를 쳐 합계 174타를 기록했고, 프레스트윅의 그린키퍼이자 홈코스의 주인이나 다름없던 올드 톰 모리스가 58타, 59타, 59타로 176타를 적어 2타 차 준우승에 머물렀다. 앤드루 스트래스가 180타로 3위였다. 이듬해 대회는 세계의 모든 골퍼에게 문을 연다고 선언하며 아마추어의 출전을 허용했고, 여기서 오픈이라는 이름이 굳어졌다. 모리스는 이후 네 차례 우승했고 그의 아들 영 톰 모리스는 1868년부터 3연패해 챌린지 벨트를 영구 소장했으며, 그 때문에 1871년에는 대회가 열리지 못했고 1872년부터 지금의 클라레 저그가 등장했다.
왜 지금도 회자되나
현대 골프의 모든 챔피언십이 이 하루에서 갈라져 나왔다. 프로들만의 시합으로 출발해 이듬해 곧바로 모두에게 문을 열면서, 골프는 실력만으로 순위를 매기는 개방형 경기라는 정체성을 얻었다. 4대 메이저 중 가장 오래된 대회의 첫 페이지이자, 상금이 아니라 트로피와 명예를 놓고 겨룬다는 이 스포츠의 오랜 관습이 시작된 자리이기도 하다.